20061218

이리 오너라

하려던 일을 하기 위해 갈 길이 먼데 밤이 늦어 산 속의 한 집 문 앞에 서서 "이리 오너라." 하고 외쳤다. 그랬더니 갑자기 산 속에서 이리 예닐곱마리가 달려들었다. 열심히 달려서 몸을 피했다. 한 숨 돌리고 나니 누가 이리를 풀어 놓은 것인지 궁굼했다. 실험을 위해 다시 그 집 문 앞에 서서 "이리 가거라." 했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리 오너라." 하고 외쳤더니 아까 봤던 그 이리들이 다시 달려드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일이고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해서 이번에는 침착하게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분명 이리가 달려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특정한 말-이리 오너라.-에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누군가 재미있는 녀석이 틀림없었다. 누군가가 "이리 오너라." 하고 말 할 때 정말 이리가 와서 당황하게 될 때마다 일을 꾸민 녀석은 혼자 낄낄 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산 속의 다른 집에서 밤을 보내고 주먹밥과 고기 말린 것을 많이 준비해서 며칠 동안은 산 속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이리가 달려드는 집 근처에서 매복을 했다. 하려던 일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이리를 훈련시킨 자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가 이리를 훈련시키게 된 계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더 여기서 육포를 뜯으며 이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요즘엔 이런 재밌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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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

안부를 전하다

오랫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고기를 사주셨다. 고기를 먹으면서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한참 먹을 때 여자친구가 아버지에게 안부 전하라던 얘기가 생각났다. 아버지 만난다고 전화로 얘기하자 여자친구가 안부를 전하라고 했었다. 말 꺼내기가 좀 멋적어서 고기 먹으면서 눈치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먼저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셨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안부 전해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고 언제 한번 저녁 같이 먹자고 하셨다.

전에는 누가 안부 전해달라고 했을 때 안 전했다. 내가 사람들 자주 만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사람 만나 서로 안부 확인하기도 벅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저 전해달라는 대로 전했더니 내가 두 사람을 이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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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1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프랑소아즈 사강은 이 소설을 18세에 지었다고 한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불어로 작별할 때의 안녕이 아니고 반갑게 인사할 때의 안녕이라고 한다.

예전에 화정역에서 약속시간 남아서 전철역 한구석에 의자랑 책이랑 놓아둔 곳에 가서 얇은 책을 하나 집어서 읽었다. 읽다보니 재밌어서 가만히 앉아 가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릴 때마다 민망해 하면서 3분의 1쯤 읽었다. 집에 두고 조금씩 생각 날 때 읽다가 좀 전에 마저 읽자고 결심하고 다 읽어치웠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자신의 욕구에 따라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는 부녀가 있다. 아버지는 나이들었지만 매력적인 바람둥이다. 딸은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엘자라는 젊은 여자와 사귀고 있는데 안나라는 죽은 아내의 친구를 만난다. 그녀는 상식적이고 고지식해서 지금까지 만난 육체적인 여자들과는 색다른 점이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결국 아버지는 젊은 애인을 버리고 안나와 결혼하기로 한다. 딸은 안나가 이전에 자신과 아버지에게 없던 안정과 평온함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딸 세실은 안느가 두 사람에게 점차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의 애인인 시릴르를 만나지 못하게까지 하자 장난처럼 어떤 계략을 생각해 낸다.
줄거리를 다 얘기하기가 싫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다가 줄거리를 다 알게 되면 실제 책을 읽을 때 김샐 것이기 때문이다. 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을 읽었다. 그게 책을 온전히 느끼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세실은 결국 슬픔을 받아들이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것이 세실을 성장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성장이라고 하더라도 안느의 생활방식처럼 상식적이고 평범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공허하고 시니컬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아버지와 딸은 가끔 안느를 회상하겠지만 아버지와 딸의 삶이 변화되었을 것 같지 않다. 세실의 공허함에 공감해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평생 그런 식으로 살 것이라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은 좀 힘든 일을 겪어봐야 하고 병에 걸리거나 가난해져야 좀 더 삶에 절박해지지 않을까하는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 평생을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신을 파괴시키면서 살며 공허해하는 삶은 스스로 슬퍼하기도 부끄러울 것이고 주위의 깊은 동정을 받을 수도 없다. 난 더 절박하게 생을 붙잡으며 더 높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바라보며 살겠다.

20061204

죽는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데스노트 중에서

성경에는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 사람들도 죽음을 경험하고 하나님께로 갔을 것이므로 위의 말은 맞는 말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에녹과 엘리야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것도 사흘이나 있다가.

죽음조차도 넘어서는 영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나도 죽는다.

하지만 죽고 난 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검색하다 알았는데 모세 형님도 하늘로 이미 가 계신다고 한다.

20061202

하나쯤 얻어도 나쁘지 않겠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 18장 22절

믿을 만한 책에 써있는 거니까 한번 믿어봐야겠다.

소갈비의 위력

가끔 누가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봤을 때 소갈비라고 대답하면 잠시 상대
방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게 된다.
그리고는 대부분 '소갈비 같은 소리'한다고 한다.
소갈비의 위력을 실감한 후 누가 뭐 먹고 싶을 때 딱히 대답할 것이 떠올리면 조
심스럽게 소갈비란 단어를 입밖에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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