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6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일

지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공일오비나 스위트피 같은 나약한 독백들을 들으며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여러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것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간당간당하게 사회생활 흉내내며 어울리는 나를 생각하는데
오래된 상가 건물 뒤쪽 주차장에서 아직도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추워서 발이 얼어가는 데도 몇시간을 발을 움직여대고 또 손을 비벼가며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난 잊고 있었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 했는데
그는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음지으면서도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난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어쩔 수 없이 난 혼자인게 편하고 또 혼자인 게 나뿐만은 아니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는 내 말을 들으며 "춥지?"하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의 마음이야 내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해서 그렇게 했다지만 사실 나는 주머니에 손 넣고 있었으니까 별로 손시렵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손이 더 차가워서 내 온기가 뺏길 판이었다.
그래도 그가 나를 따뜻하게 하려 한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걸어오며 내가 혼자란 것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 그를 다시 떠올렸다.
새로 얻은 직장에서 겉도는 주변인인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술마시며 웃고 얘기할 때는 그를 완전히 잊고 있다가
조금씩 직장일이 손에 익어가고 사람들을 조금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세상을 느끼고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쯤 그가 나타났다.
아니 그는 이제서야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항상 내 주변에 있었는데 내가 이제서야 발견한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내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과 상관 없이 그 이상으로 나를 지켜보고 나를 위하는 바보같은 사람을 또 한번 만난 것이다.
그의 눈에 있던 눈물자국을 흐릿한 불빛 속에서도 보았다.
어쩌면 일부러 티내려고 안 씻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힘들어도 힘든지도 모르고 아둥바둥 조마조마하며 그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러느라 울지도 못했는데
그는 나를 위해 울어주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의 마음을 이제 또 알았지만
내가 또 그를 잊지 않으리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작은 약속도 버거워하는 겁쟁이에다가 내가 준 상처는 금세 잊고 내가 받은 상처들만 마음에 새겨놓는 비겁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서 변하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말을 듣고싶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내 얇고 하찮은 입으로 그런 엄청난 단어를 말할 자신이 없다.
내 입으로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 사랑이란 것에 자꾸 내 마음을 두는 이유는
그가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 정말 실재한다는 것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라면 나도 그 사랑이라는 것에 가까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기억과 따뜻함이 희미해지고
내일 있을 업무와 함께 일할 사람들 걱정에 두려움이 몰려든다.
그가 나를 택했다는 게
이런 나를 그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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