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26

동생의 지적

동생이 내가 먹고 나서 설겆이를 안 한다고 불평했다. 잘 한 것도 아니고 마땅히 할 말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동생이 친구 만나러 나가고 나서 배고파서 뭘 해 먹을까 하고 보는데 동생도 자기가 먹고 난 그릇을 설겆이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좀 나빴다. 자기나 잘 하지 나한테 뭐라고 하면서 자기도 설겆이 안 하는 게 어디 있냐고 다음에 보면 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상 사람들 모두 완벽한 의인은 없으니 서로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각자 잘못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 잘못했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동생도 잘못을 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잘못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동생의 잘못과 내 잘못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좀 분한 마음이 생기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동생을 비웃으면서 난 동생 그릇까지 설겆이하겠다.
"쳇, 지도 똑같으면서."

향수를 고르는 것에 대하여

처음부터 향수를 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을 고르는데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물가게에서 둘러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뭐 찾는 것 있냐고 물어보며 도와주려고 했는데 난 괜찮다고 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예쁜 여자한테 줄 선물을 고르고 있는데 뭘 사야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좀 여자친구가 맘이 좀 상해서 "안 사도 돼." 하고 말해서 기운이 좀 빠졌지만 다시 잘 달래서 필요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었다.
"남자가 아무리 여자 마음에 들게 선물을 골라도 여자의 감각에 맞게 고르지 못하잖아. 내가 내 마음대로 골라서 선물했는데 니가 받아도 별로 맘에 안 들어서 쓰지 않으면 아깝기도 하고 별로 도움이 안 되서 둘 다 실망하게 되잖아 그러니까 니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얘기하면 내가 그걸 너한테 선물하는 거야. 그럼 나도 맘에 드는 선물 사게 되서 기분 좋고 너도 좋잖아."
처음엔 잘 말을 안 하더니 몇가지 품목을 얘기했다. 그 중에는 향수도 있었다. 난 향수가 좋겠다 싶어서 화장품 가게에 가서 이향 저향을 맡아본 후에 만다리나 덕을 골랐다. 그걸 생일선물로 줬다. 좋다고 했는데 정말 여자친구 맘에 쏙 드는 향이었는지는 모른다. 여자친구가 그 향수를 뿌린 냄새를 맡는 게 좋다. 내가 골랐으니까 내게는 맘에 쏙 드는 향이었다. 향수를 살 때 화장품 가게 아주머니가 향수 샘플을 주었는데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다비도프 쿨 워터 게임 포맨 이었다. 그 향수를 써보면서 향수를 고르고 그것을 사용하는게 참 즐거운 일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향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화장품 가게에 가서 향수를 골랐다. 샘플이 맘에 들어서 다비도프 게임 포맨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다비도프 게임 포 우먼의 향을 맡아보니 과일향도 나고 더 부드럽고 맘에 들어서 그것으로 샀다. 아주머니가 "남자향수, 여자향수 하는 구분은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 뿐이지 향이 마음에 들면 그걸 고르면 되요."하고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난 다비도프 쿨 워터 게임 포 우먼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난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하는 것들은 내 주변 가까이 우연처럼 덩그러니 놓인 것들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고 직장을 구하고 하는 것들, 그 외에 모든 일들 모두.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을 전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통해 벌어지게 될 것이란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내 주위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는 게 삶을 사는 데 더욱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20060520

마음 속의 응어리

이상하게 내가 사는 세상은 하지 말란 것 투성이다.
술을 안 먹으면 안 되고 눈치가 없어서도 안 된다.
너무 솔직해도 안 되고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도 안 된다.
군대 갔다 오긴 했느냐, 갔다 왔는데 그 모양이냐, 군대에서 많이 맞았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들을 땐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올라와서 그걸 가라앉히려 애썼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들이었다.
난 군대 갔다 와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고, 심하진 않지만 좀 맞았었다.
행동이 굼뜬 편이고 눈치도 없어서 하는 행동은 단순하고 헛점투성이다.
그렇다고 그다지 성실하거나 꾸준히 노력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그저 항상 하는 일이, 힘들어 하면서도 참아가면서 하고, 고민하고, 답답해 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난데 왜 세상의 관점에 맞지 않는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일까?
맞다, 난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지.
지금의 내 모습이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세상이 원하는 데로 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가야할 나만의 길을 걸어 완전해지고 싶다.
요즘 사람들을 대하는 게 많이 피곤한 일이라고 느낀다.
피곤을 느끼는 패턴은 이러하다.
내가 평소 하던대로 행동한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답답하거나 못마땅해 내게 나의 모습에 대한 불만을 내게 표현한다. 난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답답해하고 힘들어해서 괴롭고, 지금의 내 모습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이 아닌 것을 알고, 또 잘 변하지도 않는 것을 알아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뭐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뭘 잘 한 것도 없다.
하나님께 날 더 좋게 변화시켜달라고 기도드렸다.
좀 더 온전하고 평온한 모양으로 바뀌고 싶다.
생각뿐 말뿐.
달라지는 것이 없다.

20060502

잊고 다시 기억하고

수술실 선생님들께 배웠던 것들을 잊었다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기억한다.
오류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은 방 안이 더워서 웃도리를 벗었다.
병원에서 오후에 한가할 때 더워서 창문을 열었더니 더운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창 밖에는 꽃도 피고 푸른 풀에 녹색 나뭇잎들에 화사한 색의 풍경이 봄이 제대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벌써 5월이고.
조금 전의 날들의 추웠던 기억도 잊혀지고 다시 더운 날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억했던 것들을 잊었다고 해서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기억할 때는 처음보단 조금 더 익숙하고, 대응속도가 빠르고, 조금 덜 당황하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렇게,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점점 나름의 대응방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씩 나아지겠지.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대야 하는 이유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