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26

향수를 고르는 것에 대하여

처음부터 향수를 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을 고르는데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물가게에서 둘러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뭐 찾는 것 있냐고 물어보며 도와주려고 했는데 난 괜찮다고 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예쁜 여자한테 줄 선물을 고르고 있는데 뭘 사야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좀 여자친구가 맘이 좀 상해서 "안 사도 돼." 하고 말해서 기운이 좀 빠졌지만 다시 잘 달래서 필요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었다.
"남자가 아무리 여자 마음에 들게 선물을 골라도 여자의 감각에 맞게 고르지 못하잖아. 내가 내 마음대로 골라서 선물했는데 니가 받아도 별로 맘에 안 들어서 쓰지 않으면 아깝기도 하고 별로 도움이 안 되서 둘 다 실망하게 되잖아 그러니까 니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얘기하면 내가 그걸 너한테 선물하는 거야. 그럼 나도 맘에 드는 선물 사게 되서 기분 좋고 너도 좋잖아."
처음엔 잘 말을 안 하더니 몇가지 품목을 얘기했다. 그 중에는 향수도 있었다. 난 향수가 좋겠다 싶어서 화장품 가게에 가서 이향 저향을 맡아본 후에 만다리나 덕을 골랐다. 그걸 생일선물로 줬다. 좋다고 했는데 정말 여자친구 맘에 쏙 드는 향이었는지는 모른다. 여자친구가 그 향수를 뿌린 냄새를 맡는 게 좋다. 내가 골랐으니까 내게는 맘에 쏙 드는 향이었다. 향수를 살 때 화장품 가게 아주머니가 향수 샘플을 주었는데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다비도프 쿨 워터 게임 포맨 이었다. 그 향수를 써보면서 향수를 고르고 그것을 사용하는게 참 즐거운 일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향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화장품 가게에 가서 향수를 골랐다. 샘플이 맘에 들어서 다비도프 게임 포맨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다비도프 게임 포 우먼의 향을 맡아보니 과일향도 나고 더 부드럽고 맘에 들어서 그것으로 샀다. 아주머니가 "남자향수, 여자향수 하는 구분은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 뿐이지 향이 마음에 들면 그걸 고르면 되요."하고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난 다비도프 쿨 워터 게임 포 우먼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난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하는 것들은 내 주변 가까이 우연처럼 덩그러니 놓인 것들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고 직장을 구하고 하는 것들, 그 외에 모든 일들 모두.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을 전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통해 벌어지게 될 것이란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내 주위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는 게 삶을 사는 데 더욱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댓글 1개:

  1. 익명09:28

    애인과 이야기하는 건 어떨때는 외줄타는 것같기도 해요. 아슬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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