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5

나의 집이 아닌 듯

집안에 바퀴벌레가 늘어간다.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그 친구들에게 많이 익숙해졌다. 바퀴벌레약을 뿌려도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방을 거니는 그들을 볼 때면 내가 마치 손님인 것 같다. 그들이 내가 사는 곳에 들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내 생각이고 어쩌면 내가 그들의 영역을 빼앗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의 영역을 얻기 위한 고결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피해자라 여기지만 그들의 피해가 훨씬 더 처참하다.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얻은 피해는 시각적인 불편함과 잠재적인 위생상의 문제-실제로 배탈이 나거나 피부에 뭐가 나거나 한 적은 없다.-정도이지만 그들에게는 수많은 동료들의 육체가 짓이겨지고 약물로 살해당하는 등의 체감적이고 직접적인 피해였던 것이다. 나는 나의 사소한 안위의 불편함을 지키기 위해 생명체를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선자이고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현 상황을 바꾸려 들지 않는 비겁자이기도 하다. 내가 권력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약자들을 희생하게 하는 일을 목격해왔을 때 온전히 분노만 해왔지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는데 바퀴벌레를 통해 그들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서로간의 싸움은 계속된다. 내가 바퀴벌레가 되지 않는 이상 그들을 이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그들과 함께 지낼 수가 없다. 바퀴벌레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이 있다고 가정이라도 해보고 싶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런 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을 만든 하나님이 기적 한 번 안 일어나게 재미없는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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