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11

톰과 제리의 당연한 결말

"엄마, 엄마!."
하고 티비를 보던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의 어머니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선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엄마, 제리가 잡혔어."
어머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어서 마음을 놓고 아이에게 말했다.
"걱정하지마, 제리는 금방 도망칠 거야."
어머니는 그게 톰과 제리의 마지막회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평소처럼 하루종일 제리를 쫓다가 지친 톰은 우유를 찾았다. 혹시 제리가 우유에 뭔가를 탔을 지도 몰라서 발톱에 살짝 찍어서 맛을 봤다. 다행이도 우유에 이상은 없었으나 그 얄미운 제리 때문에 우유도 편하게 먹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오늘도 제리에게 완벽하게 당한 하루였다. 꼬리는 털이 벗겨졌고 엉덩이는 토치의 불꽃에 타서 빨겠고 얼굴엔 선인장 가시가 잔뜩 붙어 있었고 머리에는 혹위에 혹이 나있었고 바보같이 제리가 준 여송연을 피우다가 터져서 사자머리 처럼 털이 일어났고 얼굴은 그을렸다. 정말 화가 치밀어오르고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서 맛있는 우유도 그만 먹고 제리를 찾아 나서려다가 참았다. 톰은 침착하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난 평생 저 조그만 제리 녀석에게 당하는 역을 맡은 것일까? 만약 내 인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정해져 있다해도 난 인정할 수 없어. 내가 아무리 애써도 지금의 바보같은 내 모습처럼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내가 정말 편하게만 살려면 이 집을 뛰쳐나가 제리 녀석이 없는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난 평생 고양이로서 떳떳하게 살 수 없을 거야. 이 집에선 먹을 것도 충분히 주어서 예전 선조들처럼 쥐를 굳이 잡아먹지는 않아도 되지만 이 제리 녀석 잡히기만 하면 뼈째 다 씹어삼킬 거야! 제리 녀석을 해치우고 내 한계를 넘어설 거야.

예리한 시청자는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톰의 그 결심 이후로 톰의 눈은 좀 더 날카로워졌다. 톰은 매일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갔다. 매일 아침 동네 슈퍼까지 왕복 달리기를 했고 자신의 발톱을 항상 최상의 상태로 날카롭게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나 선물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제리의 행동 패턴을 익혀서 다음 행동을 예측해갔다. 필요시에는 다른 동물들과 거래해서 함께 제리를 쫓기도 했다. 제리에게 놓는 덫은 더욱 빠르고 가볍고 정교하게 개량시켰다.

그러던 어느날, 당연하게도, 톰은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너무 싱거워서 톰은 어이가 없었다. 제리가 집에 있던 케익을 혼자 다 먹고 자기 집에 가 잠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톰은 몰래 뚫어놓은 비밀통로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톰은 성급하게 다가가 잡으려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제리에게 다가가서 밧줄로 팔을 뒤로 젖혀 묶고 두 다리도 묶고 몸통을 감아서 묶어 제리의 쥐구멍 천장에다 매달았다. 이 개념없는 제리녀석은 그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톰은 그냥 제리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일생 최대의 적과 추억이 될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었지만 톰은 어느새 멋진 짐승으로 변해 있었다.

톰과 제리가 나눈 이 대화는 편집에 의해 잘려나가 어린이들이 티브이로는 시청할 수 없었다.

톰: 제리, 일어나라.
제리: 뭐야? 내가 잡힌거야?
톰: 그래. 너 나를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니야?
제리: 우습게 보기는 딱 제대로 봤지. 넌 항상 실수투성이였으니까.
톰: 그래서 난 너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결국 너를 잡았다.
제리 : 니가 그래 봤자지. 난 이 만화의 주인공이라고. 아무리 니가 애써도 난 언제나처럼 여길 빠져나갈 거니까.
톰: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널 놓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널 잡고 말 것이다.
제리 : 어? 저기 스파이크가 쫓아온다!

톰은 속지 않았다. 톰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톰은 스피이크는 비밀 통로를 알지 못하며 만약 스파이크가 비밀 통로를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스파이크는 덩치가 커서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리: 어쭈. 안 속네.
톰: 하나만 묻자. 도데체 넌 어떻게 그렇게 날 따돌릴 수 있었냐?
제리: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니까지. 난 천부적으로 너보다 영리하고 또 주인공답게 귀엽게 생겨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어. 너한테는 안 된 이야기지만. 세상은 내 편이지.
톰: 난 인정할 수 없어. 고양이가 쥐를 이기는 게 당연한 거야!

톰은 제리와 더이상 대화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서 그의 예리한 발톱으로 제리의 경동맥(Carotid Artery)을 정확히 잘랐다.

티비에서 톰과 제리의 마지막화는 이렇게 제리의 죽음으로 끝이났지만 티비 미방영분에는 약간의 얘기가 더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아이는 제리가 죽으면서 끝이나는 톰과 제리 마지막 장면을 보았다. 외면받고 조롱당하던 톰의 승리를 본 아이의 인생은 조금 시니컬해졌다. 처음에 아이는 제리를 불쌍히 여겼으나 점점 커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인생이 톰과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톰은 제리의 맥박이 뛰지 않고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안심을 했다. 톰은 더이상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살지 않았다. 톰은 제리에게 쌓인 울분을 떠올리며 제리의 얼굴을 발톱으로 있는 힘껏 후려쳤다. 제리의 얼굴은 예리하게 파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톰은 제리를 묶은 밧줄을 풀고서 자신의 결심대로 제리를 뼈째 다 씹어먹었다.

톰이 밖으로 나가자 햇빛에 눈이 부셨다. 평소처럼 제리에게 당한 상처대신 제리의 피가 톰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동물들은 톰을 두려워하거나 제리를 위해 울었다. 더 이상 톰에게 다가서는 동물은 없었다. 그 후로 톰은 외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톰은 주위에 자신을 쳐다보는 동물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래, 난 언제나 나쁜 놈이지." 하고 말하며 시냇가로 가서 피를 닦았다.


Tom and Jerry

The End

댓글 2개:

  1. 익명16:39

    피식... 그럴듯하게 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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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피식
    난데없이 옛날 글에 덧글 달아 기분 좋게 만드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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