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23

자기 계발

집으로 오는 길에 온통 자기 계발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에 한 시간 일을 더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한가해서 나를 2시간 일찍 보내 줬다. 회사에서 시간외 근무수당 주지 않으려고 하는 수작이었다. 그래도 나는 일찍 집에 간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나이든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벌써 퇴근하는 거야?"
"네."
"일찍 퇴근하면 뭘 할 거야?"
"집에 가서 잘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졸려서요."
"젊은 사람이 집에서 잠이나 자면 되나. 자기 계발을 해야지."
뭐 꼭 자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대답하려니 그런 말을 하게 되었다. 딱히 계획이 없었다. 평소에 집에 가서도 공부를 한다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도 자기 계발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자주 가는 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옥션에 가서 싼 중고 디카 둘러 보면서도 자기 계발에 대해 생각을 했다. '난 내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저 하루 하루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하루 하루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난 자기 계발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좀 답답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금새 어두워진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있었는데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친구들 만나고 헤어졌는데 너네집 근처야 잠깐 보자."
"그래."
난 답답하던 차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를 만나 돌아다니다가 밥을 먹고 여자친구네 집 근처 놀이터에 앉아서 얘기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난 자기 계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표정이 조금 어두웠나 보았다. 여자친구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너 무슨 안 좋은 일 있니? 얼굴이 굳어있어."
"별로 특별한 일 없었어. 그냥 아까······."
그렇게 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네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탱탱볼을 가지고 놀다가 찬 공이 여자친구 옆으로 굴러왔다. 여자친구는 일어나서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더니 "내가 공 그 쪽으로 차줄게." 하고 공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달려가다가 오른쪽 다리를 들어 공을 찼다. 아니 차려고 했다. 여자친구는 헛발을 차서 모래만 날리고 공은 옆으로 조금 움직였을 뿐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무심결에 이렇게 외쳤다.
"자기 개발!"
여자친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 친구 옆에 놓인 공으로 달려가 아이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하고선
"난 개발 아니지롱."하면서 춤까지 췄다.
"난 나를 발전시켰어."라고 말할 때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무슨 소리야?"
"난 자기 계발에 성공한 거야. 조금 전에 자기가 헛발질 했을 때 나는 나를 발전시켰어. 그 전까지는 내가 아무 발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그 헛발질의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 순간을 나의 발전의 계기로 삼은 거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내 삶을 긍정적오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은 거야. 내 유머감각도 더욱 향상된 거라고."
그리고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달려가 양 어깨를 잡고 천천히 얼굴을 들이대다가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자기 개발"
여자친구는 막 웃어댔다. 여자친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이 사랑스런 여자친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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