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9

먹기만 했어.

eunduk | 29 9월, 2006 23:32

어제는 회식이었는데 난 술도 안 마시고 별로 할 얘기도 없었어. 어차피 난 잘 먹다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난 먹는데 집중했어. 사람들은 음식도 다 먹었는데 가지 않고 얘기하고 있었어.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건 아니라고 생각되는 얘기도 있었어. 그런데도 그냥 듣기만 했어. 이유는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무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어. 그래 꼭 뭔가 변화시키거나 의미있는 대화를 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잘 어울리게 이런 저런 말 하면 되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 내게는 먹는 게 더 의미있는 것으로 여겨졌어. 먹으면 맛있으니까.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내가 좀 이기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다른 사람들도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할 수도 있지만 여기 참석해서 같이 적절한 속도로 먹고 부담되지 않는 화제로 이런저런 얘기하며 상대와 조금은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난 내가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별 말 없이 먹기만 하니 얼마나 제멋대로야. 한창 먹고 나서 배가 부르니 가만히 앉아있기 지루해서 컵과 접시들을 크기별로 정리하기도 하고 먹고 남은 뼈를 그릇에 담기도 하고 먹고 남은 마늘을 크기별로 정리한 후 제일 넓은 것부터 쌓아보기도 했어. 그런데 옆에서 얘좀 보라며 웃어서, 관심 끌려고 이상한 짓 하는 걸로 보이기 싫어서 그것도 관뒀어. 내 멋데로 하는 것 같아도 난 보이지 않는 나를 통제하는 어떤 선 안에서 굴복하고 말았던 거야. 난사람들이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로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는 않았어. 어쩌면 사람들이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하면 안 될꺼라고 생각하는 것도 내 좁은 생각안에서의 공상일 뿐일지도 몰라. 먹기만 하는 게 지겨워 혼자 이생각 저생각 하는 것을 즐긴 것일 수도 있고. 돌아보니까. 꼭 먹기만 하지도 않았구나.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어. 칼집도 적절히 나있고 양념도 괜찮았고. 설겆이도 안 해도 되고 필요한 것들 갖다 주니까 편하고 좋았어. 내 돈 주고는 비싸서 그렇게 맘 편히 먹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남기지 않고 다 먹었지. 제일 아랫사람인 내가 수저나 접시 준비하고 고기 자르고 뒤집고 하는 것은 눈치도 없고 둔하고 서툴러서 잘 하진 못했지만 가 제일 잘 한 게 있다면 남기지 않고 먹었다는 거야. 그게 제일 만족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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