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8

벌써 오후 4시네.

eunduk | 28 10월, 2006 15:52

나가 볼 생각이다. 씻지도 않고 일단 옷부터 입었다. 주머니에는 자동카메라에 필름을 채워 넣었다. 씻는 것을 포기한 대신 난 약간의 시간과 풀린 눈을 얻었다. 밖에서 아는 사람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어쩌면 씻으면 조금 나아보일 거라는 것도 내 환상일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 내가 몸을 일으키는 데 하루의 반절 이상이 소모되었다. 어제 다 읽은 그 시간 많은 소녀 모모가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 내가 모모 옆에 있었더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너무 시간이 많아 그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해가는 역으로 나올 지도 모르겠다. 모모는 느리고 게으른 사람의 바쁜 세상에 대한 자기변명과 푸념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말이다. 어차피 인생 공수래 공수거 그냥 왔다가 가는 거다. 나에게 시간을 공급하시는 분에게 참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뭐, 그분은 그런 것 다 아시면서도 내게 시간들을 누리라고 주셨을 거다. 멍하니 있거나, 깨어서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있거나, 씻지도 않고 목적없이 돌아다니거나 하다가 어쩌다가 가끔 아주 짧은 시간에는 무언가 쓸모있는 일을 하기도 하는 거지.

20061027

5일 후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

사는 게 힘들고 지겹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5일 후에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3일째 되던 날에 전쟁이 일어난다. 그는 어차피 신중히 결정해서 죽기로 마음먹었는데 전쟁이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상황과 계획을 외국에 서버가 있는 블로그에 올리고 계획대로 실행했다. 개인 대피소에 숨었다가 다음날 개인 비행기에 기름을 가득 싣고 식량도 없이 마지막 비행에 나섰다.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자 금새 바다가 나왔다. 아무런 허가도 없이 타국의 국경을 넘게 되면 격추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바다만 날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바다라, 바다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온통 파란 물 뿐이지만 그게 참 멋졌다. 그리고 지겨워지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바다 구경 실컷 하면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았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졸립기도 했고 그래도 금방이었다.금방 계획한 5일째 되는 그 날 그 시간이 되었다. 그는 비행기를 폭발시켰다. 바다로 뛰어들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신동아에 난 이 기사
를 보니까 전쟁일 때 오히려 자살률이 늘어난다고 나와있었다. 난 그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이 전쟁이 일어나면 더 살려고 애쓰게 되는 게 싫어서 자신의 계획대로 자살하는 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이 기사를 다 읽고 생각이 바껴서 지금처럼 썼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하길.

기분 나쁜 얘기

eunduk | 27 10월, 2006 21:39

A: 너한테 기분 나쁜 얘기 좀 해도 될까?

B: 하지마.

20061024

준 포토

eunduk | 24 10월, 2006 23:41

능곡 초등학교 밑에 있는 준포토.

현상과 스캔까지 4000원으로 나에게만 인하해주셨다.

거의 갈 때마다 깎아달라고 했더니 결국 이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오늘도 깎아달라고 다른 데는 3000원 하는 데도 있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기계가 1억하는 건데 그러면 언제 본전 뽑냐고 하시더니 결국 깎아 주셨다.

현상하고 인덱스만 뽑으면 싸긴 한데 사진이 너무 작아서 촛점이 맞았는지도 확인하기 힘들다.

아주 싼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 가격이면 감당할 만 하다고 본다.

동생이나 엄마는 그것도 비싸다고 할 테지만.

낮에 가면 부인과 아이들도 볼 수 있다.

사진관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액자에 리얼라로 찍어서 확대했다는 액자에 부인의 젊었을 때 사진이 걸려 있다.

여기저기에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도 있고.

나도 여자친구나 가족, 교회 사람들 사진이 많다.

사진을 많이 찍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자동으로 모델이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 듯 하다.

20061021

친구들의 결혼식

친구들의 결혼식
eunduk | 21 10월, 2006 03:08

진현이와 재근이의 결혼식날이다.
처음 맞는 친구들의 결혼식이다.
근데 도움을 준 것 하나 없어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결혼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4시가 다 되었는데 잠을 안 자고 있다.
뭔가 쓰고 나면 맘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뭐라도 적는다.

요즘 내 삶을 돌아보면 이것저것 해보지만 하나 제대로 한 것은 없는 느낌이다.
잠이나 잤으면 더 알찬 시간이었을까?

20061019

쓸 데 없어 보이는 것들

eunduk | 19 10월, 2006 02:59

가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쓸데 없는 일 같다.

내가 열심히 즐겁게 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쓸 데 없다고 여겨지는 일이다. 또 내가 쓸 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을 하면서도 어쩌면 이게 중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말 뭐가 중요한 걸까? 무엇도 확실하지가 않다. 자꾸 따져보면 별 거 아닌 것 같다.

어떨 땐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참 쓸데없는 일 같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쓸데 없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시간만 자꾸 흘러간다.

뭐라도 하고 있는 게 나은걸까? 더 나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왠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기회가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20061012

그런데 너는

그런데 너는
eunduk | 12 10월, 2006 22:40

개역한글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남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개역개정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표준새번역

그런데 너의 눈과 마음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것과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만 쏠려 있다."

새번역

그런데 너의 눈과 마음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것과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만 쏠려 있다."

공동번역

그런데 너는 돈 욕심밖에 없구나. 죄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려고 눈을 부릅뜨고 백성을 억누르고 들볶을 생각뿐이구나."

공동번역 개정판

그런데 너는 돈 욕심밖에 없구나. 죄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려고 눈을 부릅뜨고 백성을 억누르고 들볶을 생각뿐이구나."

CEV

But all you think about is how to cheat or abuse or murder some innocent victim.

GNT

But you can only see your selfish interests; you kill the innocent and violently oppress your people. The Lord has spoken.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것을 GNT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고 CEV는 그런 것만 생각한다고 하고 표준 새번역은 쏠려 있다고 한다.
내가 보고 생각하고 쏠려 있는 것은 뭐지?
또 내가 보고 생각하고 쏠려 있는 것은 내 눈 앞에 그런 것들이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로 그리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그것만 보고 생각하고 거기에 쏠려 있어서 그런 것이다.
더 좋은 것들 꼭 봐야 할 것을 나를 만드신 분이 원하는 것을 보고 그것들을 자꾸 생각하고 거기에 온 정신이 쏠려있게 되기를 바란다.
내 행동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꼭 그렇게 되기를 내 마음속의 한 부분에서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말 뿐인것 같지만.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하는 피로.

eunduk | 12 10월, 2006 22:24

어제는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잤다. 사실 그저께도 그저께 전날도 피곤했다. 어제는 집에 들어오자 마자 푹 잤다. 푹 자면 아침이 더 개운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가려고 더욱 전의를 불태워 나 자신의 더 천천히 움직이고 싶고 또 눕고 싶은 욕구와 싸웠다. 5분 더 먼저 나갈 수 있었다. 충분히 잠도 자고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그리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5분이나 앞당겨서 일어난 것에 대해 좋은 징조이며 희망의 작은 조각이라 생각하며 좋아했다. 오늘도 일을 끝냈더니 역시나 피곤했다. 어제처럼 가만히 앉아있으면 꾸벅꾸벅 졸게 될 정도는 아닌 걸 보니 어제 푹 잔 잠이 역시 효과가 있었나 보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몸은 피곤하고 그렇다고 또 그냥 자기도 그렇고 고단해서 뭔가를 하기도 귀찮았다.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티비 뉴스에서 북한 핵 개발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다가 부시가 북한에 대해서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을 듣고 재수없다고 생각하다가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몸이 조금 고단하다는 핑계로 뭘 하기도 귀찮은 이 기분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이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그리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피곤하면 쉬고 싶고 쉬면 피곤이 가시니까 쉬면 그만인데 맘 편히 쉬지도 못한다. 난 정말 피곤한 걸까? 내가 일하는 병원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다 함께 일하는데 그 사람들은 새벽까지 친구들 만나 놀기도 하고 아침에 운동도 하고 저녁엔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다들 일 하지 않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난 뭘 했나 싶다. 또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자기일에 능숙해서 최고라 불리는 사람들은 분명 나처럼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자기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런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나처럼 멍하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사람들은 다 나름의 길이 있는 것이고 나름의 피곤도가 있어서 조금 더 피곤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조금 덜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난 누구와의 비교도 필요없이 내가 느끼기에 피곤하면 그저 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니 뭔가 나 자신에게 불만이 있다. 또 그저 일 끝내고 별로 한 일도 없이 보낸 하루하루가 아쉬운 거다.

난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되는데로 살고 싶지는 않다. 너무 욕심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게 욕심 없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포기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벌써 열시가 넘었다. 조금 있다가 자면 또 다음날이 되어버린다. 일어나고 씻고 일 나갔다가 들어오면 또 피곤하다고 멍하니 이생각 저생각만 하고 있겠지.

아니야. 그건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는 예측이야. 평생을 별 일 없이 지낸 어떤 할아버지도 젊었을 때의 어느 피곤한 저녁에는 뭔가 신나는 다음날을 꿈꿨을 거야.

내일은 뭔가 신나고 즐거운 음 어 편의점 가서 이동통신사 할인카드로 할인받아서 초컷릿이나 사먹을까.

20061007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고
eunduk | 07 10월, 2006 20:49

인간은 지구에서 스스로의 지위에 대해 너무나도 오만하다.
사소해 보이는 일이 중요한 일일 수도 있고 대단해 보이는 일이 별 것 아닐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좋은 일이 있어도 기뻐하지 못하게 한다.(마빈)
썰렁하더라도 유머감각을 잃지 말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해답이 나지 않는다.
내 관점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인생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날 보러 와요를 보고.

날 보러 와요를 보고.
eunduk | 07 10월, 2006 20:36

연극을 처음 봤다.
저기 앞에서 정말 말하고 움직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실감나던지.
연극 보기 전에는 비싸기만 하고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제는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에 한사람씩 들어오면 박수를 보내는데 정말 진심으로 온 힘껏 박수를 쳤다.
얼마나 연습을 하고 준비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61004

적지만 소중한 친구들.

eunduk | 04 10월, 2006 13:28

일 끝나고 학교에 가서 동아리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많아 처음엔 너무 반가워서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느라 바빴지만 인사말고는 더 할게 없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는 결국 제일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곁으로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 사람들과는 좀 더 편하게 얘기하고 장난도 치면서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적고 내 행동반경이 너무 좁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내게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낸다고 해도 결국 나와 연락도 하고 만나면 어색하지 않고 마음속의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깝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 수는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핸드폰에 번호가 많이 저장되어 있어도 정작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대여섯 명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난 내게 가까이 안 되는 그 몇 안되는 사람이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들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니까. 너무 자주 봐서 당연히 잘 지내고 함께 있는 줄 알지만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허물어지면 내 삶 전체가 흔들릴 테니까.

난 많은 친구들을 가지진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적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을 더 아끼고 존중하며 함께 행복한 이 지구에서의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