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8

벌써 오후 4시네.

eunduk | 28 10월, 2006 15:52

나가 볼 생각이다. 씻지도 않고 일단 옷부터 입었다. 주머니에는 자동카메라에 필름을 채워 넣었다. 씻는 것을 포기한 대신 난 약간의 시간과 풀린 눈을 얻었다. 밖에서 아는 사람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어쩌면 씻으면 조금 나아보일 거라는 것도 내 환상일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 내가 몸을 일으키는 데 하루의 반절 이상이 소모되었다. 어제 다 읽은 그 시간 많은 소녀 모모가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 내가 모모 옆에 있었더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너무 시간이 많아 그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해가는 역으로 나올 지도 모르겠다. 모모는 느리고 게으른 사람의 바쁜 세상에 대한 자기변명과 푸념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말이다. 어차피 인생 공수래 공수거 그냥 왔다가 가는 거다. 나에게 시간을 공급하시는 분에게 참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뭐, 그분은 그런 것 다 아시면서도 내게 시간들을 누리라고 주셨을 거다. 멍하니 있거나, 깨어서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있거나, 씻지도 않고 목적없이 돌아다니거나 하다가 어쩌다가 가끔 아주 짧은 시간에는 무언가 쓸모있는 일을 하기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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